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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혼

[리본프로젝트 ①] 빚은 1억, 양육비는 0원 - 이혼하고 7살 아이와 살아남은 법

by 미엘언니 2022. 8. 31.

 

 

안녕하세요, 미엘언니입니다.

 

제가 드디어! 생각만 하던 [리본프로젝트 (Re-Born 프로젝트)] 1탄으로, 여러분과 저의 이혼 고민을 시작해보았습니다.

 

[리본프로젝트] "다시"라는 뜻의 Re, "태어나다"는 뜻의 Born을 합친 말로, 꼭 이혼이 아니어도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싶은" 목표를 가지신 분들과 제가 함께 하고 싶은 프로젝트입니다. =)

 

이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만든 기쁜 소식도 당연히 있습니다!

 

 

 

2022년 8월 19일 금요일에! 제가 드디어 최종 이혼 판결문을 2년 8개월 만에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ㅠㅠ

 

아직 항소 기간은 남아있지만 [1심 판결문]이라는 게 이렇게 나왔다는 자체만으로도 저는 너무 기쁘고, 행복하고, 힘들었던 때들이 다 까마득한 옛날 일인 것만 같고, 그렇게 마음이 기운을 차리니 속으로만 생각하던 프로젝트도 용기를 내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1탄으로 [이혼]이라는 예민한 주제를 잡은 이유는, 제가 3년에 가까운 이혼소송을 겪고 시달리며 가장 많이 들었던 고민과 질문이 이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애가 돌쟁이예요 (or 이제 갓 3살이에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일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요 (or 아이가 아직 손도 많이 가고, 경단녀입니다.) 그런데 이혼하면 당장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어 아이와 살 수 있을까요? 상대방 때문에 모은 돈은 고사하고, 가진 건 제 이름으로 된 빚 밖에 없는데 집은 어떻게 얻을까요? 돈이 없으면 월세밖에 못 얻죠? 그럼 당장 그 월세는 어디서 어떻게 벌어서 낼 수 있나요?"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시나요? 내가 대신 해결해줄 수 없어서 안쓰럽다? 저렇게까지 상황을 몰아넣은 그 상대방이 너무 나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그땐 세상에서 제가 가장 불행한 사람 같았고, 인생의 삼재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암 진단을 받았던 게 2016년 12월이었는데, 하필 또 모든 암 중에서 재발률이 가장 높은 데다가 골수까지 침범된 <소포성림프종 4기>였고, 그 때문에 항암치료도 3년을 받았으니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3년의 항암 치료를 마친 때가 2019년 9월이었고, 그 뒤로는 안과, 소화기내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통증의학과, 신경과, 정신의학과 할 것 없이 망가진 몸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회복을 시켜보겠다고 검사와 수술만 쉬지 않고 두 달을 받았음에도 제가 집에서 받은 취급은 일반 암 환자들과는 너무나도 달랐기에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결심이 서게 된 사건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저에게 있어 가장 큰 이유는 [폭력]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 몸 상태가 어느 정도였냐면,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밤낮으로 일을 하고, 몸도 따뜻하게 해주지 못하고, 애까지 케어하느라 무리에 무리가 쌓여 <척추관협착증>까지 생겨 신경차단술도 2번이나 받았고, 10걸음만 걸어도 발가락이 들리며 쥐가 나고, 계단을 오르내리려면 난간에 제 몸을 걸치고, 팔에 무게를 실은 채 오르내려야 했을 정도로 근육도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였음에도 발가락이 꼬이면 발바닥을 눌러가며 무식하게 걸어 체력을 키웠습니다.

 

이혼을 한다는 건 저 혼자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려면 체력이 필수였고, 하루라도 더 빨리 도망치려면 이런 몸 상태로는 안된다는 절박감이 정말 컸기 때문입니다.

 

 

저를 결심하게 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돈"이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유튜브에 풀었지만 저 또한 돈으로 뒤통수를 참 많이 맞았고, 두 달 동안 한국에서 검사와 수술을 마치고 2019년 11월 말에 돌아갔을 때에도 저희 두 달 매출이 3,000만 원에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금고에 남은 돈은 200~300 달러가 전부였습니다.

 

심지어 직원 급여, 게스트하우스와 사업장 월세, 각종 공과금 등을 단 하나도 내지 않았음에도 돈이 저렇게밖에 남지 않은 이유는 모른다고만 하니 집에 가자마자 수술 회복은커녕, 일단 제 신용카드로 대출과 리볼빙 등을 받아 메꿨습니다. 당시 저희는 동남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외국에서 외국인인 저희가 기대할 수 있는 은행 대출 시스템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혼소송을 걸 당시에 이 빚들도 모두 저 혼자 떠안았고, 아이도 제가 데려왔고, 양육비는 1원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심지어 이혼을 이야기하니 당시 사업자명도 그분이 가져갔습니다. 본인 이름 글자가 들어갔으니 자기 것이라길래 더럽고 치사해서 줘버렸습니다. 저도 떠올리기만 해도 치가 떨릴, 그 이름의 한 글자도 제 옆에 두고 싶지 않았기에 오기로라도 줘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빚과 아이만 옆에 둔 채, 당장 다음 달부터 신용카드로 받은 대출 이자와 원금이 닥쳐오니 손 벌릴 곳은 없고 정말 졸도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시기도 너무 절묘했던 게, 사업자명을 빼앗긴 후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을 하고 어쩌고를 할 수조차 없게 2020년 1월에 코로나가 터져 2월부터는 저희가 살던 동남아도 모두 봉쇄가 되었고, 그렇게 현관문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다가 6개월 말에 변론기일이 잡혀 5월 말에 반 강제적으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으니 수입은 없는데 지출만 계속된 나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때까지 어떻게 살았느냐!

 

저희 사업장에서 일해주시던 강사님의 정보 덕에 <소상공인대출>이란 걸 받을 수 있어 그걸로 카드 대출을 먼저 갚을 수 있었고, 남은 돈으로는 비행기 값과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의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처음 사업자등록증을 냈을 때 그분이 너무 늑장을 부려 제가 신생아를 들쳐 업고 가서 제 이름으로 사업자를 냈던 건데 이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tmi를 또 하나 풀자면, 당시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편 중 가장 저렴했던 게 5월 말에 출발하는 일정이었는데 그분은 혼자 가니 비행기 값도 한 명 분만 내면 됐지만 저는 두 명 분을 내야 했고, 심지어 공항 대기실에서 마주쳤음에도! 제게 끝까지 아무 말도 없으셨다는~ ㅎㅎㅎ)

 

 

각설하고!

 

저처럼 셀프 전자소송으로 하는 사람들은 변론기일에 본인 참석을 하지 않으면 소송이 취하되니 한국에 들어는 왔는데 당장 아이와 격리할 장소도 문제였습니다. 호텔로 가면 숙박비도 문제지만, 모든 식사를 룸서비스나 배달을 시켜야 하니 적게 잡아도 2주간 100만원 이상은 써야 하는지라 금액 때문에도 아예 불가능한 가정이었는데, 엄마가 희생을 해주셔서 엄마 집에서 자가격리와 이후 몇 달 동안의 비비기(?)를 하며 집을 얻을 때까지의 월세와 공과금, 식대를 정말 많이 아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주간의 격리를 마치고, 아이는 당시 7살이었으니 가까운 유치원에 보내며 한글도 초단기로 가르치며 일자리를 찾아보는데 "복지 대상자는 취업성공패키지를 할 때 자기 부담금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일단 주민센터부터 당장 달려갔습니다.

 

겪어보니 "저 이렇게 힘들어요~"를 하고 싶다면 친구가 아니라 주민센터 복지팀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그분들이 하나라도 해당되는 게 있을지 열과 성을 다해 찾아주십니다!

 

저는 당시 수입은커녕 빚만 있던 상태였음에도 이혼이 되지 않아 한부모 혜택은 하나도 받지 못했고, 그분이 물려받은 땅이 있어 재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복지는 해당되는 게 없었는데 암환자 산정특례 5년 기간이 끝나지 않아 [차상위 의료비 본인 부담 경감 대상자]가 될 수 있었고, 전기세, 가스비, 통신비 할인도 함께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지금도 병원에 갔을 때 급여 부분은 모두 0원, 비급여만 돈을 내고 있고, 저희 아이도 제 밑으로 들어와 있어 일반 소아과 등은 1,000원, 약국은 500원, 소아응급실에 가서 60만원 정도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실제 낸 돈은 8만원 대였을 정도로 병원비 부담이 적어져 아이가 어디가 아프다고 할 때 정말 마음껏 병원에 데려갈 수 있어 너무 감사하며 생활하는 중입니다 ㅠㅠ

 

제가 그린 그림이니 불펌은 안돼요 :)

 

그리고 차상위가 됐기 때문에 취업성공패키지도 교통비만 내며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혼까지 오게 된 과정 등 여러 가지가 너무 억울해 만화로 이 모든 썰을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강했는데, 막상 4개월간 배우면서 보니 기초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도 문제였고, 나이도 40이 넘은 상태라 저는 제가 제 그림을 그리며 저를 스스로 취업시켜주지 않는 이상은 일반적인 취업은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즉, 새로운 배움은 있었으나 당장 수입과는 연관이 없는 교육을 받으며 4개월을 허비한 셈인데 그때는 또 무슨 돈으로 살았느냐!

 

쭉 모아두었던 아이 세뱃돈과 용돈 저축을 깨서 살았습니다. 대신 핸드폰 메모장에 모두 적어두었습니다.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이건 제 돈이 아닌 아이 돈이었기에 제가 추후 필히 갚아야 할 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취업성공패키지>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나 장소가 하나라도 더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4개월의 긴 교육을 신청한 것이었는데 막상 교육이 시작되니 수업은 재미있었지만, 실질적인 가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엄마네 집에서도 슬슬 나와야 할 때가 도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5월 말에 입국해, 6월은 자가격리와 아이 유치원 등록 등으로 날리고, 7월은 복지 알아보고 취업성공패키지에 등록한 뒤 일정 맞춰본다고 날리고, 8월부터 12월까지는 취성패 교육을 받는다고 날렸으니 1년 내내 무언가 정말 열심히 하긴 했으나 결론적으로 돈을 까먹기만 한 것이니 자괴감이 얼마나 엄청났겠습니까...

 

허송세월만 하고 있는 것 같고, 자꾸 정답이 아닌 길로만 가는 것 같고, 조바심은 나는데 그분은 그 와중에 잊지도 않고 답변서를 보내니 그때마다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읽으며 증거와 함께 반박문을 작성하고 있노라면 별별 부정적인 생각이 온 뇌리를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되어 강제적으로라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제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아이와 살 집을 찾는 일돈을 버는 일이었습니다.

 

집 보증금은 대출도 불가능했던 저였기에 노력으로 대체될 수가 없는 부분이라 엄마에게 고개를 숙였고, 엄마가 또 고개를 숙여주셔서 총 8천만원을 3% 이율로 빌릴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서울로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재택으로도 가능한 일, 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회사 등을 잡코리아와 알바몬 등을 뒤져 모두 나열한 후 소거법으로 하나씩 지워갔습니다. 일단, 아이가 학교에서 일찍 끝나기도 했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언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일반 회사는 모두 불가능했고,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블로그에 글을 대신 써주는 등의 업무라 들이는 시간에 비해 벌이가 너무 적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지워 나갔더니 남은 직업이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였습니다. 당연히 저도 선입견이라는 게 있던 평범한 사람이었던지라 학습지 교사를 더 먼저 알아봤지만, 학습지라는 게 학교 수업이 끝나야 시작을 하는데 제 아이를 챙겨야 할 시간에 다른 집 아이들을 챙긴다는 게 현실적으로 아예 가능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은 단 하나,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혼 카페에 가면 보험설계사 관련한 부정적인 글이 굉장히 많기도 했고, 그 외에도 좋지 않은 인식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했습니다. 소상공인대출 이자를 내야 할 날짜도 매달 정해져 있고, 엄마에게 빌린 전세 자금 이자도 드려야 하고, 그 외에도 아이 학교 방과후, 간식비, 생활비, 식대, 교육비, 공과금, 통신비, 보험료 등 고정비라는 건 제가 노력한다고 해서 줄어드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하든 나는 하겠다! 내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라 애를 제대로 키워내는 게 먼저다!"는 마음을 먹으니 그제야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불륜은 그냥 그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직업이 문제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운이 좋았던 건, 강남사업부라는 부자 지점으로 입사를 하게 되어 1년에 딱 2번 있는 "입사하면 가전제품을 주는 기간"의 마지막 달에 제가 딱 걸려 회사에 들어가며 12인용 LG 식기세척기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이건 지금도 저희 집에서 제가 집안일에 소모하는 시간을 제대로 줄여주어 저희 집 필수 이모님 중 한 분이 되셨습니다 ㅎㅎ

 

그리고, 입사 후 처음 두 달은 아는 게 없으니 교육을 받으며 엄마와 저희 아이의 보험을 두 달에 걸쳐 나눠 넣었더니 어찌어찌 2개월간 급여라는 것이 조금이지만 따박따박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니 부탁을 드리지 않았는데도 가입을 해주신 지인 분들도 계시고,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연락을 주신 분도 계셔 그때부터는 조금씩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보험 일에도 재미가 붙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통장 인증이나 수익 인증을 보며 회사를 선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막 입사해서 지식도 거의 없는데 입사하자마자 월 1,000만원씩 찍는 일이 있으면 모두 그 일을 하지 왜 다른 일을 하고, 내 보험 담당자는 그렇게나 자주 바뀔까요 ㅎㅎ

 

하지만 사람이 상황에 쫓기면 당장 큰돈이 필요하니 그 생각이 들지 않기에 일을 찾으실 때  꼭 명심하셔야 하는 건 "조급해하지 말기!"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플래너 일을 시작을 하니 급여가 매달 들어온다는 점은 너무 감사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안정성>이었습니다. 매달 고정적이지 않은 급여는 항상 마음 한 켠을 불안하게 했고, 항상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는 점도 한몫했는데 여기서부터는 2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유튜브 미엘언니 채널에서 확인해주세요~ =D

 

 

 

[리본프로젝트]의 모든 내용은 "이런 방법을 권장드린다"는 게 목적이 아닌, 저 같은 사람도 지금까지 살아남고 있고, 이런 방법들로 아이와 다시 서기를 하고 있다는 실질적인 정보도 나누고, 누구에게 터 놓거나 기대지 못했던 여러분들의 사연을 함께 공유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 먼저 제 개인사를 털어놓는 중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용기 있는 사연에도 항상 따뜻한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
                                                                                                                                           - (알고 보면) 개복치 드림 -